# 비평이 객관적 해석이 아니라, 주체와 주체가 만나는 ‘사건’이라는 것. 14쪽

 

# 역사에서 승자는 늘 타자(The Other)에 문을 연 개방국가였다. 19쪽

 

# 1986년 첫 학기에 홍승오 교수님으로부터 아주 꼼꼼한 『이방인』 강독 강의를 들었고, 1991년 보르도 대학으로 프랑스어 연수를 받으러 갔을 때, 나는 이 책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카뮈의 글을 두어 쪽씩 외워쓰면서 나는 수식어가 많은 문장이 그다지 좋은 문장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문학은 화려한 수식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세계의 진실을 붙잡으려는 정신의 노력을 담는 일이다. 24쪽

 

# 예를 들면, ‘~ 때문에’와 ‘~덕분에’를 구분하는 일 같은 것이다. 25쪽

ㄴ‘덕분’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뜻하는 말로 긍정적인 의사 표시에 사용

ㄴ‘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을 의미하는 ‘때문’은 부정적인 맥락과 긍정적인 맥락에서 모두 씀

ㄴ‘탓’은 부정적인 현상이 생겨난 까닭이나 원인을 뜻하는 말이므로 주로 부정적인 맥락

 

# ‘욕망의 삼각형’ 모델을 만든 르네 지라르 26쪽

ㄴ어떤 대상에 대한 나의 욕망(돈키호테)이 같은 대상(이상적인 방랑의 기사)에 대한 타자의 욕망(아마디스라는 전설의 기사)에 의해서 결정된다. 타자의 욕망이 광고, 마케팅의 이미지로 대치되면서 모방욕망이 탄생된다.

 

# 나의 김현은 삶과 죽음 사이 아주 짧은 시간에 걸쳐 있는 풍경이 되었기 떄문이다. 44쪽

 

#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외국 이론가를 인용하며, 그 이론에 기대는 것을 싫어한다. 내 언어로 녹여낼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건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이다. 특히 해당 외국어로 원서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장황하게 이론을 늘어놓은 것을 보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난다. 그 번역을 어떻게 믿으며, 해당 이론이 발생한 문화사적 맥락(context)을 잘 모른 책 어떻게 그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문학 평론에 인용된 대부분의 자크 라캉이 그 예일 것이다. 프로이트 이후 프로이다즘의 다양한 갈래에 대한 이해와 함께 구조주의를 모르면, 라캉의 경우 곳곳이 개념의 지뢰다. 다른 한 예가 보들레르의 ‘댄디즘’이다. 이 개념은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속물근성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미의 찬양’인데, 한 비평가에 의해 21세기 한국에 와서는 저항의 뇌관이 거세된, 정반대의 뜻을 가진 ‘여피(Yuppie)’ 버전으로 오해되어 쓰인다. 50쪽

 

# 외국어대학교에서 재직하다 막 서울대로 옮긴 이인성 선생을 내 또래들은 거의 ‘형’이라고 불렀다. 내 동기인 대학원생들이 특히 그랬다. 그런데 선생은 처음부터 나에게 가서 인사를 하라면서 “너는 ‘이인성 선생’이라고 불러라” 못 받았다. 아마 그때 이미 당신의 건강 문제 때문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지에 대한 대비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처음부터 지금ᄁᆞ지 이인성은 나에게는 뛰어난 글쟁이 선배이자 또 다른 선생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곁에서 여러 번 확인한 사실인데, 이인성 선생을 정말 아꼈다. 52쪽

 

# 작품의 가치란 외적으로 규정된 의미의 구현 정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이라는 기호의 더미 속에서 스스로 생성되는 의미의 복합적 가능성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이란 외적 효용의 관점에서는 ‘쓸모없는 것’이어서, 오히려 ‘쓸모 있음’으로 여겨지는 다른 대상들의 진정한 가치를 묻는 질문자의 역할을 자유롭게 할 때에야 비로소 존재 이유를 갖기 때문이다. 59쪽

 

# 텍스트의 의미는 그 자체로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맥락(context)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의미는 관계 속에 있다. 60쪽

 

# 일생 이청준의 소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간직했던 선생 60쪽

 

# 파블로 피카소는 아버지가 미술 학교의 교사였으며, 본인은 바로셀로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이력을 한사코 감췄다. 자신을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로 포장하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그리스 신화의 제왕 제우스로 존재 이입한 작품을 적지 않게 남겼다. 피카소의 경우, 재능은 분명 천재적이었으나, 인간은 개차반이다. 나는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부터 시작해서 유럽 전역의 피카소 작품을 거의 보았다. 천재다. 하지만 작품의 성숙과 인간적 미성숙이 모순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사실이다. 천재의 작품은 감탄스럽지만 감동이 일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피카소의 친구 조각가 자코메티가 이런 말을 남겼다. 피카소가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그냥 천재일 뿐이더군! 우리의 문학예술계에도 그 모순의 예는 많다. 64쪽

ㄴ작품은 그 작품을 만든 작가와 분리되는 성격이 아니다. 작가의 삶이 작품이고 작품이 작가의 삶이다.

 

# 문학이 삶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삶의 의미 자체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나가기 시작했다. 65쪽

 

# 나는 1986년에 ‘프랑스 현대시 입문’ 강의를 들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샤를 보들레르의 「취하시오(enivrez-vous)!」였다. 한 부분을 우리말로 옮겨 적어보겠다. “지금은 취할 시간!당신이 시간에게 학대 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취하라! 쉬지 말고 취하라! 술로,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에 따라.” 이 도취의 ‘인공낙원’이야말로 존재와 삶의 궁극이 아닐까? 지금에 와서 털어놓는 여담이지만, 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대마초와 아편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 도시는 커피숍에서 자연성분 마약을 팔며, 실내에서 흡입하는 것은 허용한다. 효과는 환상적이었다. 온몸의 무게가 다 사라지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가벼움이 나를 감쌌다. 그걸 가지고 돌아와서 센 강변에 나가 피우곤 했다. 그런데 기분이 상상 이상으로 너무 좋아서, 그 뒤로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빠져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그런 행복은 불완전한 인간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을 위해 무슨 일을 했다고 그렇게 행복해도 되나? 지금도 나느 그렇게 생각한다. 약으로 말고 내 몸과 정신으로 얻은 행복이 아니면 가짜다. 그래서인지 30대 이후로느ㄴ술과 마약 같은 ‘블랙 매직’에는 큰 관심이 없다. 1991년 보르도 대학에서 공부하면서부터 와인을 배워 꽤 알고 즐겨 마시지만 반드시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반주로만 마신다. 어쨌든 그때 암스테르담에서 불법으로 구입한 아편은 지금도 파리에 남아있는 친구에게 주었다. 그 친구는 지독한 환각 때문에 죽은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왜 나에겐 ‘해피 드러그’였던 것이, 그에겐 아니었을까? 똑 같은 것을 두고도 사람은 이렇게 반응이 다르다. 67~68쪽

 

# 술에 취한 것이 창피해서 또 술을 마셨으며 (이 비유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보다는 하승남이라는 당시 유행하던 무협 만화가의 작품에 더 근사한 이유가 담겨 있었다...(중략)...“취했을 때는 세상과 내가 하나인데, 깨어나면 세상이 나와는 저 멀리 떨어져 있구나!” 68내 일생을 객관화하여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았고, 일상을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허무주의가 선동하듯 이유없이 내동댕이쳐진 세상에서의 무의미한 소진(消盡)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69쪽

 

# 무엇보다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결핍과 고통과 싸워가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결국 삶이란 의미 없음과의 싸움이며, 문학은 그 의미를 복합적으로 묻는 ‘열린 형식’이란 것을 간신히 알만큼 성숙할 수 있었다. 70쪽

 

# 순수하면서 명민한 후배가 하나 있어서 데리고 가기로 했다. 반포의 한 술집이었다. 72쪽

 

# 평소의 선생답지 않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한 여성 소설가의 이름을 꺼내며, 대중작가에 불과한 재주 없는 여자가 순진한 청년 시인 하나를 파멸시켰다며 통탄을 하셨다. 72쪽

 

# 선생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가들을 꼭 읽으라고 했다. 76~77쪽

 

# 그 창백한 병실에서 본 선생은 내가 알던 김현이 아니었다. 말을 꺼내기도 힘겨워하는, 마치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를 닮아가는 듯 파리하게 야읜, 졍색이 완연한 중년의 육체, 초라한 뼈와 살이었다. 놀란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상황헤서도 선생은 웃었다. 소년 같은 천진한 웃음! 그 끝에 선생은 사모님이 병실을 내내 지키느라 힘드니 때로 사모님을 대신해서 곁에 와 있으라고 했다. 상황을 봐서 사모님을 통해 미리 연락을 하시겠다고 그날만큼은 선생의 따듯한 배웅도 없었다. 나가지 못하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시지 말아야 했다. 병실을 나와 병원 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날은 차가웠다. 걷다가 눈물이 흘렀다. 그 넓은 병원 마당 한복판에서 스물다섯의 청년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구석 벤치에 앉아 속절없이 울었다. 78쪽

 

# 나는 마치 연애편지 쓰듯 선생 앞에서 읽은 걸 조잘거리며 말을 배웠으며, 내 일생을 객관화하여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았고, 일상을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허무주의가 선동하듯 이유 없이 내동댕이쳐진 세상에서의 무의미한 소진(消盡)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억압이나 강요 없이, 그냥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나는 그 배려를 받았다. 비유하자면, 선생과의 그 ‘발견술적 대화’를 통해 나는 한 마리 축생에서 사람으로 조금씩 존재 이전했고, 무엇보다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결핍과 고통과 싸워가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결국 삶이란 의미 없음과의 싸움이며, 문학은 그 의미를 복합적으로 묻는 ‘열린 형식’이란 것을 간신히 알만큼 성숙할 수 있었다. 79쪽

 

# 숲에 눈이 내리면 세상이 고요해진다. 눈덩이 자체가 소리를 빨아들이는 방음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82쪽

 

#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게 단순히 이성 간의 사랑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앎은 우리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84쪽

 

# 서양 문헌을 살펴보면, 평균수명이 서른을 넘지 않았을 16세기에도 죽음에 대한 불안을 나타내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거기에는 죽음 이후의 삶을 설명하는 기독교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인들에게 근대 이전까지는 죽음조차도 최후의 심판이 남아 있는 삶의 한 과정이었다.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그들은 신을 죽였다. 그리고 니체의 선언처럼, 신의 죽음과 함께 현대인이 탄생했다. 현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신을 죽인 대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사는 우리들이야말로 일생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87쪽

 

# 나는 철학이란 삶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물음이자, 죽음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우는 일로 이해한다. 88쪽

 

# 나날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 뿐, 죽음은 언제든 찾아올 운명인 것이다! 내가 논리의 이지적인 삶보다는, 두 발로 딛는 대지의 약동과 이마를 스치는 바람을 더 소중하게 느끼는, 한마디로 감각적인 삶을 선택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내 첫 책의 제목을 ‘감각의 실존’이라 지은 것도 나로서는 이지적, 논리적 삶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나는 문학에서건, 삶에서건, 이 태도를 지금까지 유지하려 애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 앞에서 내내 두려움에 떨며 아프지 않을까 근심하던 ‘불행한 시체’가 아니고, 죽음의 순간, 마침내 기다리던 대상을 만나는 ‘행복한 시체’로 관에 들어가길 나는 정말 바란다. 내 개인적 경험과 함께 선생의 때 이른 죽음이 준 큰 선물이다. 88~89쪽

 

# 사실 그 행복과 불행의 팽팽한 균형이야말로 카뮈의 매력이다. 93쪽

 

# 그때마다 선생은 자신의 세대에 맞는 언어와 형식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3쪽

 

# 선생의 한 특징은 ‘해야 한다’는 ‘당위로서의 이무’를 잘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꽤 할 만한’이라는 수식어 이상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선험적’이 아닌, ‘의미 창출적’ 언어를 문학적 갗로 생각한 성샌의 철학이다. 그의 언어는 그래서 늘 ‘발생의 사건’이었고, 그런 점에서 선생은 상대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ᄈᆞ져들게 만드는 세련된 선동가였다. 96쪽

 

# 말도 피처럼 근친교배야말로 치명적 위험이자 자기 파멸이기 때문이다. 말은 다양하게 섞일 때에만 미지의 새로운 창조적 활력을 얻는다! 그것이 선생이 사숙(私塾)한 스승 가스통 바슐라르가 적은 말의 ‘폭발’이다. 100쪽

 

# 문학이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의 가장 깊고 다양하며 섬세한 변주 양식이다. 101쪽

 

# 선생의 묘지는 양평이었다. 지금이야 전철까지 뚫려 바람쐬듯 훌ᄍᅠᆨ 다녀오는 근교가 되었지만,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당시는 꽤 먼 곳이었다. 나로서는 덕소, 양수리와 같은 곳을 처음 가봤다. 103쪽

 

# 선생이 평소에 좋아한 노래 김창완의 <청춘> 104쪽

 

# 가스통 바슐라르의 과학 인식론이 보여주듯이, 오류는 더 큰 진리로 나아가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그 오류를 통해서 새로운 진리의 가능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선생은 그것에 ‘감싸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115쪽

 

# 그는 말의 따듯한 온기로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다. 118쪽

 

# 선생을 떠올리면, 40대에 막 접어든, 황지우 시인의 표현처럼 체구가 ‘김응용 감독만한’ 기운 넘치는 건장한 모습과 함께, 그날 병실 창에 비친, 바지가 벗겨진 앙상한 엉덩이와 다리의 이미지가 꼭 겹친다. 삶과 죽음 사이에 그가 걸쳐 있는 것이다. 특히 자코메티의 조각상 같은 그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198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선생의 글이 왜 단문으로 이어지며 ᄍᆞᆲ아졌는지, 수식어가 줄며 문장 사이의 여백이 늘어났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물론 그가 몸과 글의 일치를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다. 군더더기를 싫어한 맑고 정갈한 그의 성품이 40대의 완숙함과 함께 글로 나타난 것이다. 외람되지만, 선생의 문장은 그때가 백미다. 글이 짧아진 대신 여백의 여운이 짙어서 마치 말의 샘물처럼 읽을 때마다 새로운 풍미가 솟아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스칼의 말을 인용해야겠다. 친구에게 긴 편지를 쓴 뒤, 그는 추신에 이렇게 썼다. “미안하네! 짧게 쓸 시간이 없었네.” 나는 말이 많고 긴 평론을 읽지 않는다. 122쪽

 

# 글쟁이로서의 선생은 내내, 그 쓸모없는 것을 해서 뭐 하냐는 모친의 질문과 싸웠다. 그런데 한국문학은 우리의 사유와 감성을 담아내는 한국어를 일구어 세련되게 가꾸는 최일선의 전위(前衛)다. 한국어로 사유할 수 없으면, 그 감각을 표현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그 사유와 감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소월의 토속어든, 춘원의 계몽적 언사든, 외국어문학도의 프랑스어든, 이인성과 이성복의 전위적 언어이든, 그에게 언어는 쓸모없음 자체로 삶의 의미 없음과 싸우며 새로운 의미 창출의 싹을 틔우는 판이었다. 124쪽

 

# ‘천국이란 거대한 도서관’이란 표현은 바슐라르의 것이다. 126쪽

 

# “모든 작품은 그 이전에 나온 작품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성찰의 결과다(7:13)”-좋은 비평이란 언제나 하나의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작가들에게는 그래서 조금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비평은 결코 개별 작품에 대한 주석이 아니다. ‘분석과 해석’이라는 과정 속에서 비평은 작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자 작품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들어가고 나오는 행위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구분 행위 가 아니라 동시적이다. 거기에서 비평은 작품에 대한 주석이기를 그치고 그 자신 작품이자 작품이 아닌 글쓰기의 실천, 곧 생성의 글쓰기가 된다. 136쪽

 

# 작품/텍스트에 대한 존중은 우선 실증(實證)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사랑이란 그 대상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가슴 두근거리며 처음으로 손을 잡기까지 어떻게든 상대를 파악하고자 애쓰는 열에 들뜬 청춘처럼 ‘실증’은 모든 비평의 출발이다. 최대한의 성실성을 전제로 하는 ‘실증’의 작업이 없다면 대상은 몸을 내주지 않는다. 설령 내주더라도 거기에는 일회적인 부딪침이 있을 뿐이다. 둘 사이에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반복적인 관계가 없다면, 부딪침은 부유하는 욕망의 소리에 실려 다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한국문학은 그런 점에서 성숙한 애정의 모델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 이상(李箱)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경우 섬세한 애정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김윤식 같이 실증주의의 선구적 연구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문학은 ‘실증’의 차원에서 아직까지는 서투른 사랑을 하고 있다. 139쪽

 

# 비평은 대상을 재단하는 폭력이 아니며, 대상을 평가하는 권력도 아니다. 좋은 비평은 사랑의 말이기 때문이다. 140쪽

 

# 작가는 세계를 개조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 영웅적으로 싸우는 것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4:345) 141쪽

 

# “할 수 없어.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야. 술 같이 먹으면, 그걸 문학으로 알지.” 156쪽

 

# 선생은 특히 거짓말을 싫어했다. 157쪽

 

# 절대로 휘둘리지 않을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몰라서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아는 척하지 말고, 상대에게 그 질문의 정확한 뜻이 무언지 거꾸로 물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거짓을 피할 수 있고, 거듭 묻다 보면 상대에게도 결코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나중에 반드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서 알아야 한다는 점을 덧붙이시면서! 질문은 단순한 요령이 아니다. 그것 자체가 힘이자 의미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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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으로 이어질 책들

-살아 있는 새들; 김현

-한국문학의 위상; 김현

-문학이란 무엇인가; 유종호

-악의 꽃; 샤를 보를레르

-시칠리아의 암소; 미셸 푸코

-젊은 시인들의 상상세계_비평

-분석과 해석_비평

-말들의 풍경_비평

-나와 너; 마르틴 부버_선생님 젊은 날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고 고백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가들

-러시아 형식주의; 빅토르 어얼리치

-변증법적 상상력; 마틴 제이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 유진 런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프랑수아 라블레

-팡세; 블레즈 파스칼

-수상록; 미셸 드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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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으로 이어질 인물들

-가스통 바슐라르

-이인성 

-이청준

-복거일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발터 벤야민

-유종호

-김윤식

-이인성

-정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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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

1)앤솔로지anthology

-그리스어의 안솔로기아(anthologia: 꽃을 모아놓은 것)에서 유래된 용어

-한마디로 ‘선집(選集)’이다.

-서적이라면 편집자가 잡지나 책 등 발표되었던 명작, 걸작 등을 모아 다시 수록한 작품집

-음반이라면 그동안 발표되었던 곡 중에서 좋은 것들만 다시 모아 실은 음반으로 꼭 한 사람의 작품만 모아 놓은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의 작품을 모은 것도 앤솔로지에 해당

 

2)금치산자

-법원에서 금치산의 선고를 받은 법률상의 무능력자

-자기행위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의사능력이 없는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는 자

 

3)아니마 anima

-본래는 라틴어로 <혼>을 의미하는 말

-스위스의 정신 의학자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용어로서 이용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라고 하는데 아니마는 남성에 있어서 조상 대대로 여성에 관해서 경험한 모든 것의 침전물

 

4)제네마 학파

-공식적인 명칭이라기보다는 편의상 붙인 명칭으로 제네바 대학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일련의 문학연구가를 지칭한다.

 

5)선험적

-칸트 철학의 근본개념으로 독일어를 번역한 철학 용어

-경험에 앞서서 인식의 주관적 형식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대상에 관계되지 않고 대상에 대한 인식이 선천적으로 가능함을 밝히려는 인신론적 태도를 말한다.

-선천적 본능

 

6)독사(doxa)

-플라톤이 사용한 용어로 일종의 판단력

 

7)남종화(南宗畵)

-동양화의 한 분파로 북종화에 대비되는 화파

 

8)젠체하다

-잘난 체하다

-주제넘은 태도를 취하다

 

9)축생(畜生)

-불교용어로 사람이 기르는 온갖 짐승

-고통이 많고 즐거움은 적으며, 성질이 무지몽매하고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윤리도 없이 서로 싸우고 잡아먹는 짐승과 같은 세계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짐승에 비유하는 말

 

10)디오니소스

-원초적, 직관적, 도취적

 

11)지사적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사람과 같은

 

12)사숙(私塾)

-존경하는 사람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의 도(道)나 학문을 본받아서 배우는 것을 이르는 말.

 

13)미메시스(mimesis)

-모방이라는 뜻

 

14)게토(ghetto)

-원래는 유대 교도를 강제로 격리한 일정한 거주구를 말하는데, 이를 일반화해서 소수자 집단이 밀집해서 거주하는 지구에 대해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15)저간

-바로 얼마 전부터 이제까지의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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